노근리를 아는가
(등록일: 2010-04-15 오후 5:15:12)
이동희
- 소설가·단국대 명예교수
경부선 기차를 타고 가다가 그 한 가운데 지점이 어디인지 꼭 기억할 필요는 없다. 정거장 수로나 거리상으로 정 중간에 위치한 지점을 아는가. KTX가 옆으로 비껴 가고 새마을호는 서지 않고 무궁화호가 하루 몇 번 서는 작은 역이 있다.
황간이다. 플랫폼은 그 바닥이 1905년 역이 처음 들어설 때 만들어진 것인지 낡은 채 더러 보수를 해 놓았고 기차가 설 때마다 시골 사람들이 몇 명씩 오르내리는 시골 정거장이다. 거기 조금 못미처, 내릴 준비를 하라는 안내방송을 하는 지점쯤에 쌍굴다리가 있다. 노근리다리 그 생지옥을 아는가.
그 앞으로 지금 노근리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있고 그 건너 동산에는 희생자들의 합동묘역이 있다. 사망 150명 행방불명 13명 후유장애 63명인데, 희생자 28명의 유해를 최근에 여기로 옮겨놓았다.
쌍굴다리 양쪽 어구의 흰 페인트로 표시해 놓은 무수한 총탄 자욱을 보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희생되었나 하는 것을 상상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굴다리 안에는 시멘트로 덧칠을 해놓아 그 흔적을 뭉개버렸다. 철도시설 보수 차원에서 공사를 하였다는 것인데 도무지 역사도 모르고 시대도 모르는 숙맥 같은 공무원들의 의식이 한심할 따름이다.
노근리사건은 6.25 한국 전쟁이 일어난 지 한 달 후인 1950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4일간 여기 충청북도 영동군 영동읍과 황간면 사이의 노근리에서 참전 미군에 의해 자행된 학살 사건이다. 당시 미군은 모든 피난민을 적으로 간주 총격을 하라는 명령대로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마구 쏘아대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학살사건은 미스테리이다.
정은용 노근리사건대책위원장은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고 토로하고 있다. 미군들이 마을(임계리, 주곡리 등)에 들어와 안전하게 피난을 시켜준다고 유도하여 가지고 밤에는 하천 바닥에 머물게 하고 뙤약볕에 철길로 올라가라고 하여 폭격을 하고 또 쌍굴다리로 밀어넣고 기총소사를 해댄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억울한 얘기를 백번 천번 하여도 소용 없었다. AP통신에서 보도하고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에서 톱기사로 내보내고 증언과 자료를 통해 생생하게 그려낸 AP기자들의 노근리 사건 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함으로써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유감표명을 이끌어내고 한국정부에서도 법으로 제정하여 노근리 평화공원 건설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해 여름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0년이 되었다. 그 때 1950년 6월 30일 황간 역사도 폭격을 맞아 불탔지만 어디 이 작은 정거장뿐인가. 노근리다리뿐인가. 낙동강 다리 폭파사건 등으로 얼마나 많은 피난민이 희생되었는가. 6.25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통계가 맞는지 모르지만 남한 230만여명 북한 290만여명 유엔군 15만명 중국군 9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3년 1개월만에 휴전을 하였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지구상에 동족끼리 60년을 두고 싸우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목숨을 쏟아 부으며 싸워야 하는가. 답답하기만 하다.
노근리사건을 다룬 최초의 영화 「작은 연못」이 만들어져 개봉되었다. 지난 10일 영동문화원에서는 현지 시사회를 가졌다. 정구복 영동군수 정원용 영동문화원장 등 현지의 기관장들도 참석했지만 눈이 빠진 양해숙씨 코가 주저앉은 정구학씨 외의 많은 후유장애자 희생자 유족들이 대문바윗골로 형상화된 그 때의 사건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자막에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미군이 민간인 500여 명에게 12만 개의 총알을 퍼부었다." 더 설명이 필요한가.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2012년 전작권 이양을 미루고자 하고 있는 현실과 함께 생각하게 한다.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한 「아바타」를 물리치고 「허트 로커」가 이번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이라크전쟁에서 미군 폭발물제거팀의 목숨을 건 활동을 다룬 영화다. 돈만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차를 타고 경부선의 한 가운데 노근리를 무심히 지나지 말고 그 때 그 생지옥의 단말마를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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