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은연못’ 이상우 감독 -노근리 주민 ‘억울한 죽음’ 영화에 담아 -
8년간 제작… 15일 전국 개봉 ‘화제’
한국전쟁 속 출생…한국 연극계 거성
연못의 물고기 두 마리가 싸우다 한 마리가 죽는다. 한 마리는 순간 승리한 듯 보이지만 죽은 물고기 시체가 썩어가며 물이 썩어들고 결국 남은 물고기마저 죽고 만다. 1993년 발표된 김민기의 노래 ‘작은 연못’은 전쟁의 비극을 말하고 있다. 동명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영화 ‘작은 연못’ 역시 그렇다.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6.25전쟁. 그 슬픈 날의 모습을 영상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준다.
영화 ‘작은 연못’은 1950년 7월 노근리의 철교 밑 터널(속칭 쌍굴 다리) 속으로 피신한 인근 마을 주민 수백명이 미군들의 무차별 사격으로 무참히 살해된 ‘노근리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3년간의 시나리오 작업, 6개월간의 촬영 준비, 3개월간의 촬영, 3년여 간의 후반 작업 등 8년간의 긴 기다림을 거쳐 지난 15일 전국적으로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무수히 많은 화제를 낳았다. 먼저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상우(60·극단 차이무 예술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가 처음으로 영화감독을 맡았다는 것이 그랬다.
그는 1951년 출생으로 서울대 인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조각가와 탐정’으로 연극 연출에 데뷔, ‘칠수와 만수’, ‘늙은 도둑 이야기’, ‘비언소’ 등 국내 연극사의 획을 그은 굵직한 흥행작들을 연출하며 연극계를 든든히 지켜온 그는 백상예술상 연극부문 대상, 연출상, 동아연극상 연출상, 김상렬 연극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상우 감독은 “시작부터 끝까지, 기획부터 배급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절대 있을 수 없는 선택과 결정을 내리면서 이루어진 일이다. 나는 감독이라기보다 수많은 사람이 상호작용을 하도록 하는 촉매 같은 역할이었다”고 밝혔다.
대학 시절부터 한국 전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사료를 읽었던 이 감독. 당시부터 그는 노근리 사건 등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한국전쟁 뿐 아니라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보스니아-세르비아 전쟁에 대해서도 관련 자료들을 계속 접해 왔다. 한국 전쟁 피난민으로 태어난 이 감독이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시나리오 작가로만 참여하려 했다. 이 감독은 “감독을 하기로 결정하기 전부터 제작 방향에 관한 회의는 계속하고 있었다”며 “제작자가 어차피 시작한 일, 끝까지 마무리해달라고 했다. 잘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보다는 나만큼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이 흔치 않을 것 같았다”고 밝혔다. 흔쾌히 감독 제의를 받아 들인 것은 그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진행하면서 유족들도 만났다. 그들의 가장 큰 슬픔은 무관심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유족들은 영화 제작을 반가워했다.
영화 제작 과정은 영화 보다 더 영화 같았다. 문성근(문씨 역), 강신일(강씨 역), 전혜진(짱이 엄마 역), 김승욱(자야 아빠 역), 민복기(민씨 역) 등 영화?연극계의 걸출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자발적으로 무보수 출연하고 영화 제작을 거들었다. 덕분에 제작비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영화 속 대문 바위골 사람들처럼 배우들에게 실제 주민 같은 친밀감을 자아내기 위해 배우들의 가족들을 섭외했다. 개비 아빠 역을 맡은 배우 김뢰하는 결혼식 후 신혼 첫날밤을 촬영장에서 보냈고 그의 아내인 뮤지컬 배우 박윤경씨가 영화에 특별 출연하기도 했다. 영화 프린트를 관객들이 직접 구매해 배급에 동참한 ‘필름 구매 캠페인’은 이 감독에게도 감동이었다.
최근 그는 연극 ‘광부화가들’의 연출을 맡았다. 5월 5일부터 30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빌리 엘리어트’의 영화 시나리오를 써서 유명해진 영국 작가 리 홀의 2007년 신작으로 유럽 밖에서는 이번 공연이 초연이다. 평범한 광부들이 미술 감상 수업을 통해 화가가 된다는 이야기. 1930, 40년대 영국 현대 미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일으켰던 광부 화가 그룹 ‘애싱턴 그룹’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으로 ‘예술이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일까?’를 이야기하는 유쾌한 희극이다. 아직 다시 영화 연출을 맡을 계획은 없다.
“400여명의 배우와 스태프들이 마치 한 씨족처럼 몇 달 동안 산골로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작업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기적 같습니다.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사람은 야수가 아니다. 사람의 가치는 사람 사이에서 나누는 따뜻함에 있다’는 메시지를 건네고 싶었습니다. 전쟁은 최악의 선택입니다.”
▶글/조아라·사진/시네드에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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