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대 ‘노근리 진실찾기’ 70여년 역사전쟁 기록했어요”-한겨레신문
1960년 선친의 첫 미군 상대 손해배상 소송 이래 대이어 노근리 사건 진상규명 활동을 펴고 있는 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이 70여년 투쟁 기록집 <노근리는 살아있다>를 펴냈다.
사진 오윤주 기자
“미국 상대 ‘노근리 진실찾기’ 70여년 역사전쟁 기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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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97434.html#csidxadc2b2f4fc416c1b11761eb1f05e5df
[짬]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정구도 이사장
‘어떤 피란민에게도 미군 전선 통과를 허용하지 마라. 전선 통과를 시도하는 모든 사람에게 발포하라….’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철교 밑에 있던 피란민 수백명이 미군에 의해 학살당했다. 1999년 9월29일 미국 <에이피>(AP)통신이 ‘발포 명령’을 담은 미군 1기병사단 8기병대대의 통신문 내용을 보도하며 ‘노근리 사건’은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이에 결국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유감을 밝혔고, 노근리평화공원도 만들어졌다.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정구도(65) 이사장이 지금까지 드러난 노근리 사건의 진실과, 이를 밝혀내기 위한 오랜 투쟁, 미국 정부의 대응과 노근리 사건 특별법 제정 등 발자취를 담은 기록집 <노근리는 살아있다>를 펴냈다. 노근리 사건 70여년 대장정을 담은 책은 813쪽에 이른다.
1950년 7월 미군 ‘쌍굴다리 피란민’ 학살 두 아이 잃은 선친 정은용씨 60년 첫 소송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소설도 펴내
‘사건 대책위’ 대변인 등으로 대이어 활동 최근 800여쪽 ‘노근리는 살아있다’ 펴내
“미군은 여전히 오만…특별법 제정해야”
노근리유족회 부회장이기도 한 그는 노근리 사건의 산증인이다. <에이피> 보도가 있기 한참 전인 1991년부터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사건대책위 대변인으로 나라 안팎에 사건을 알리는 ‘노근리의 입’ 구실을 해왔다.
“노근리 사건은 한국과 미국의 70여년 역사전쟁이지요. 노근리 사건 피해자들이 진상 규명과 인권 회복을 위해 미국을 상대로 치른 생생한 전쟁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노근리의 또 다른 전쟁일지인 셈이지요.”
책은 노근리 사건 희생자들의 기록이자, 살아남은 자의 슬픈 기록이기도 하다. 책은 <에이피> 보도에 앞서 세상에 노근리 사건을 알리려 평생을 바친 정 이사장의 선친, 초대 노근리미군양민학살사건대책위원장과 유족회장을 지낸 정은용씨로부터 시작된다.
노근리 사건 때 경부선 쌍굴 다리 아래로 쏟아진 미군 총탄에 두살·다섯살배기 아이를 잃은 정씨는 2014년 세상을 뜰 때까지 노근리 사건과 함께 했다. 1960년 주한미군을 상대로 노근리 사건 가해자인 미국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진상규명을 위해 애썼고, 1994년 4월엔 사건을 담은 실화 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내놓기도 했다. 이 책을 계기로 <한겨레>·<말> 등 언론에서 노근리 사건을 취재 보도했다. 그때 한전에 다니며 경영학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정 이사장은 아버지의 소설 집필을 도우면서 대를 이어 노근리 사건에 투신하게 됐다.
“아버지가 피땀으로 쓴 책을 통해 미국이 파병으로 남한의 공산화를 막고, 경제·민주사회 발전 등에도 도움 준 것은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만, 미국의 행태가 늘 옳지만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한 역사·인권 전쟁을 시작했죠.”
이번 책에는 노근리 사건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은 <에이피>와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시엔엔> 등 세계 유력 언론들이 노근리 사건을 주목하고 취재한 배경·과정 등도 담고 있다. “에이피 등 언론이 철옹성처럼 노근리 사건을 감춰온 미국 펜타곤을 열었어요.”
2001년 1월11일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노근리에서 한국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은 데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는 내용을 담은 성명을 냈다. 이후 한미 양국은 노근리 사건 조사에 나섰고, 희생자 226명·유족 2240여명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노근리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긴 했지만 사건 진상은 축소·왜곡됐고, 미국이 약속했던 추모사업마저 흐지부지됐어요. 과거를 잊으면 모든 것을 잃는 만큼 이젠 진실을 제대로 찾아야 해요.”
책은 이후 노근리 사건 가해 병사와 피해자들의 용서와 화해, 노근리평화공원 조성 과정 등도 담고 있다. 끝나지 않은 전쟁 노근리의 미래도 전한다.
“정부는 노근리를 포함해 전쟁 때 피해를 입은 국민의 억울함을 외면한 채 미국 눈치를 보고 있고, 미국은 여전히 오만과 위선으로 노근리를 보고 있다. 노근리 희생자들의 배·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 한국·미국 정부의 책임 있는 행동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이 책이 70년째 끝나지 않은 전쟁을 끝내고 평화로 가는 길잡이가 되길 기대한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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